Logger Script 겟차 - 1억 5천만대 세계 1위 브랜드, 폭스바겐 스토리
본문 바로가기

사진 출처 : 폭스바겐

다스 아우토(Das Auto.)

자동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던 폭스바겐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요즘은 배기가스 조작 문제로 잘 사용되지 않는 문구가 되었지만, 폭스바겐이 어떤 브랜드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독일에서 설립된 대중브랜드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규모측면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만큼 매우 거대한 기업입니다.

자동차 관련 조사 전문업체 focus2move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폭스바겐은 세계 점유율 12.1%로 작년에 이어 제조사 부문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폭스바겐 그룹 기준, 전 세계에 122개나 되는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과연, 어떤 과정을 거치며 글로벌기업이 되었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폭스바겐의 시작은 나치 독일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930년대 초반, 독일 내에서 자동차는 소수의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들은 앞다투어 고급 승용차를 내놓고 있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당연히 자동차를 구매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주로 운용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이 자동차를 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길 원했습니다.

독일노동전선(좌) / 카데프(우) / 사진 출처 : 위키미디아

때문에 히틀러는 어용 노조성격을 가진 독일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단체 산하 카데프(KdF)가 추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포르쉐의 창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게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매할 만큼 저렴하지만 탈만한 품질을 갖춘 차량 개발을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카데프란 'Kraft durch Freude'의 약자이며 일종의 여가 단체입니다. 주요 목표는 국민 사회주의(나치즘)을 독일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부유층(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격차를 줄이기 위해 연극, 여행, 콘서트, 독서 등 다양한 문화 생활을 장려했습니다.

특히 전쟁 직전에는 서민들도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특별 저축제도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은 이 저축제도를 통해 34만명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전쟁물자 생산에 활용했습니다.

다시 차량개발이야기로 돌아가서, 히틀러가 포르쉐 박사에게 제시한 자동차의 조건은 성인 두 명과 어린이 세 명을 태우고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어야 하며, 유럽의 혹독한 기후를 견디고 값싼 자동차이어야 했습니다.

1937년 카데프 바겐 / 사진 출처 : vwheritage

포르쉐 박사는 우여곡절 끝에 차량 개발에 성공했고 차량의 이름은 카데프 바겐(KdF Wagen)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카데프 바겐은 오늘날 비틀이라 불리는 자동차입니다. 당시 포르쉐 박사는 국민의 차라는 의미인 폭스바겐이라 부르길 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데프 바겐이 개발된 이후 독일노동전선에 의해 Gesellschaft zur Vorbereitung des Deutschen Volkswagens mbH 가 설립되었으며 얼마 후 Volkswagenwerk GmbH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아

폭스바겐은 2차 세계대전 군수물자 공장으로 전환되어 군용으로 개조된 비틀, 퀴벨바겐 같은 전천후 군용차를 만드는데 주력했습니다.

사진 출처 : 폭스바겐

하지만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전범기업이 되었고, 폭스바겐이 강제수용소 인력 1만 5천명을 동원해 노동착취 행위를 일삼았다는 사실이 연합군에 의해 밝혀지면서 언제 폐쇄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폭스바겐은 강제 폐쇄되는 대신, 기술력을 인정받아 영국군의 군용차량으로 비틀2만대를 납품하면서 살아나게 되었고, 영국군은 비틀의 품질에 매료되어 주문량을 늘리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폭스바겐은 월 1천대가량 비틀을 생산하며 독일 최대 자동차 제조사로 성장하게 되었고, 서독으로 흡수되어 경제 재건을 돕는 조건으로 폭스바겐 브랜드 역사를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BMW의 기술자 출신이자, 오펠사의 임원출신인 하인리히 노르트호프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폭스바겐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식 폭스바겐(예시사진) / 사진 출처 : 위키미디아

폭스바겐은 미국으로 진출해 비틀을 포함한 여러 모델을 판매하게 되었는데, 비틀의 저렴하며 쉬운 정비 등 여러 장점을 앞세워 1955년 한 해에만 무려 100만대 판매라는 엄청난 실적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0년대에는 연간 20만대씩 판매될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1세대 비틀은 2003년 멕시코 생산공장 단종 되기 전까지 무려 2,150만대나 판매되어 오늘날까지 월드 베스트 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비틀로 대성공을 거둔 이후, 서독의 경제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며 이때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여러 유명 자동차 브랜드를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초대형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전후 폭스바겐이 출시한 대표적인 차량으로,

비틀 (1938~2018단종)

파사트 (1972~2018년 현재)

골프 (1974~2018년 현재)

폴로 (1975~2018년 현재)

제타 (1979~2018년 현재)

투아렉 (2002~2018년 현재)

티구안 (2007~2018년 현재)

CC (2008~2017 단종)

아테온 (2017~2018년 현재)

등이 있습니다.

이 중 골프가 3,400만대 이상 판매되면서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고,

파사트가 2,000만대 이상 판매 되었으며

제타는 2,000만대 가까이 판매 되었습니다.

그리고 폴로는 1,700만대 가까이 판매되는 등

다양한 월드 베스트 모델을 보유하여 수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폭스바겐은 설립 이후 1억 5천만대나 누적생산 하여 세계 1위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폭스바겐에서 출시한 모델 중 일부는 자동차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어, 폭스바겐 판매량이 높은 이유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 flickr (Toby Jagmohan)

그러나 역대 최악의 글로벌 이슈, 배기가스 조작사건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수 십 년 동안 쌓아온 신뢰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배기가스 조작사건은 배기가스 측정 등 특수한 상황에 배기가스 조작 소프트웨어가 작동되도록 설정해 배기가스가 기준치를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이도록 속여오다, 미국에서 적발된 것이 발단이 되어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지게 된 사례입니다.

이 때 자회사인 아우디까지 조작사건의 주범으로 떠올라 전 세계 정부들로부터 수십 조에 이르는 과징금과 판매정지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매정지처분으로 한동안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사라졌다가 최근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 역사에서 디젤엔진의 종말이 가속화 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전 세계 친환경 차량 도입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폭스바겐

사진 출처 : 폭스바겐

폭스바겐은 이 시기 경영진 다수가 교체되었으며, 최근에는 2030년까지 전기차 300종 출시를 위해 95조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미지 개선을 위해 파격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폭스바겐의 역사는 기업인수 역사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다양한 기업들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습니다. 특히 폭스바겐의 여러 기업 인수로 일반 승용차, 상용차, 럭셔리카, 슈퍼카에 이르기까지 자회사를 통해 거의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폭스바겐은 어떤 기업을 인수했는지, 자동차 브랜드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폭스바겐이 인수한 기업 중 두카티는 오토바이 브랜드 입니다.


아우디

사진 출처 : 아우디

폭스바겐이 가장먼저 인수한 기업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아우디가 있습니다. 1909년 설립되어 1932년 4개의 회사가 연합해 만든 브랜드로,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다임러-벤츠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60년대 이후 폭스바겐이 아우디의 엔진 노하우, 차량 제조기술, 지분 등을 인수하면서 폭스바겐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폭스바겐 그룹 내에서는 디자인과 더불어 인공지능, 자율주행, 연료전지 등 기술혁신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아트

사진 출처 : 세아트

세아트는 스페인 국민브랜드로, 스페인정부와 금융기관들이 합작해 설립한 곳입니다. 세아트는 설립초기 피아트 차량을 판매하다, 자체 모델인 세아트600으로 대히트를 치며 스페인 국민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폭스바겐, 포르쉐와 기술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이비자와 같은 히트작을 출시했습니다.

세아트는 80년대 이후 폭스바겐과 협력을 강화해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차량을 판매하거나 직접 생산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폭스바겐이 세아트 지분 다수를 차지하면서 자회사로 편입되었습니다.

현재 세아트는 폭스바겐 그룹 내에서 소형차등을 생산하며 첨단기술과 역동성을 갖춘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스코다

사진 출처 : 스코다

유럽의 가성비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스코다는 체코 브랜드입니다. 19세기 말 설립되어, 2차대전 이후 공산권 편입으로 국영기업이 되었다가 공산권 붕괴로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폭스바겐이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스코다는 폭스바겐 그룹 내에서 실용성과 가성비를 내세운 대중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며, 동유럽권과 독일 내에서 사랑 받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벤틀리

사진 출처 : 벤틀리

20세기초 럭셔리 모델을 생산하던 기업으로 등장했으나, 경제대공황 당시 롤스로이스에 인수되어 60여년간 자회사로 운영되었습니다. 이후 영국의 중공업 그룹 비커스에 롤스로이스와 함께 인수되었습니다.

몇 년 후 BMW와 폭스바겐이 두 기업을 놓고 인수경쟁을 벌여 BMW는 롤스로이스를, 폭스바겐은 벤틀리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폭스바겐 그룹의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부가티

사진출처 : 부가티

부가티가 폭스바겐의

부가티가 폭스바겐의 자회사라는 사실은 자동차 마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모를 수 있습니다. 부가티는 예술가 집안 출신인 프랑스 공학자 에토레 부가티가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다른 제조사와 다르게 설립초기부터 자동차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중요시 여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인해 소수의 차량만 판매되었으며, 창립자의 사망으로 경영악화가 이어져 폐업수순을 밟게 됩니다.

30년후 이탈리아의 재력가에 의해 되살아 났으나, 또다시 경영난으로 다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부가티의 예술성을 살리고자 했던 폭스바겐 회장이 이를 이어받아 부가티를 완전히 부활시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경영측면에서 부가티 브랜드는 만년 적자상태이지만, 차량품질을 가격과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대당 수십억에 이르는 가격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이유로 손해가 많은 브랜드라 여길 수 있지만, 부가티 고유의 예술성이 폭스바겐 그룹의 이미지를 한 단계 높이는 자산으로 인정받아, 적자를 감수하면서 브랜드를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람브로기니

사진출처 : 람브로기니

트랙터 사업으로 성장한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는 창립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페라리의 거만한 태도에 분노하여 페라리를 뛰어넘는 차량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설립 이후 자동차 역사에 남을만한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가야르도 등 슈퍼카를 개발하여 최상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영난으로 크라이슬러에 인수되어 바이퍼 엔진을 탄생시켰으며, 폭스바겐이 크라이슬러로부터 람보르기니를 인수해(정확히는 아우디의 람보르기니 인수)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포르쉐

사진출처 : 포르쉐

포르쉐는 폭스바겐과 형제라 해도 무방한 관계입니다. 폭스바겐의 설립에 포르쉐 박사가 깊게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폭스바겐 비틀 개발이 있으며 이후에도 꾸준한 교류가 있었습니다.

포르쉐는 90년대에 이르러 경영악화로 폐업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폭스바겐의 자금수혈로 간신히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 포르쉐는 폭스바겐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자회사로 두겠다는 무리수를 두었으나, 유럽 내 여러 정부와 자동차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인수전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막대한 부채를 떠안아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폭스바겐은 이를 기회 삼아 포르쉐 사업부 전체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스카니아

사진 출처 : 스카니아


스카니아가 폭스바겐 그룹 산하라는 사실을 듣는다면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스카니아는 볼보와 함게 스웨덴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대형트럭 및 디젤엔진 등으로 유명합니다.

스카니아는 20세기 초 설립되어 유럽 대부호인 발렌베리 가문이 인수해 운영해 왔으며, 도중에 사브와 볼보의 자회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폭스바겐이 지분과 의결권을 다수 확보해 경영권을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스카니아는 오늘날 대형 트럭뿐만 아니라 대형 선박엔진까지 다루고 있어 폭스바겐 그룹의 상용부문 전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만 트럭

만은 스카니아, 볼보와 함께 중장비 및 대형트럭의 상징으로 불리는 브랜드입니다. 18세기 중순 독일의 중공업 회사로 시작해 2차대전 직전까지 모노레일, 잠수함 디젤엔진, 냉동기 등 당시 기술력의 정점을 자랑했습니다.

이후 폭스바겐이 만을 인수해 폭스바겐 그룹 상용차브랜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성 강한 여러 기업들을 인수한 폭스바겐은 기업 고유의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자동차로 분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며 세계 1위기업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공격적인 인수를 시도하다 그룹을 되파는 과정을 거친 피아트-크라이슬러(FCA), 포드 등 일부 글로벌 그룹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5년 배기가스 조작으로 막대한 이미지 타격을 입은 폭스바겐이지만, 이를 계기로 한 단계 도약하여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