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er Script 겟차 - 자동차 역사 그 자체! 메르세데스-벤츠 이야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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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는대표적인 브랜드로 벤츠가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메르세데스-벤츠로(Mercedes-Benz), 우리나라에서 BMW와 함께 수입차 시장 1~2위를 다투는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벤츠는 품질이 좋아!”라고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막연히 우수한 품질을 갖춘 브랜드로 생각하고 있을 뿐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물론, 벤츠에서 판매 중인 차량을 구매하는 데 있어 브랜드 스토리를 꿰차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벤츠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본다면 벤츠 차량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느끼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동차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벤츠, 과연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임러 벤츠 1/3 : 고틀리프 다임러의 DMG

메르세데스-벤츠는 다임러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는 브랜드일 뿐입니다. 물론,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다임러 그룹보다 인지도가 높은 편입니다. 현재 다임러가 소유한 자회사로메르세데스-벤츠, 마이바흐, 스마트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임러와 벤츠는 오늘날 다임러 그룹과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를 있게 만든 인물이며, 모두 19세기~20세기 초반 활약한 독일의 자동차 및 기계공학 엔지니어이자, 자동차 역사의 기틀을 마련한 자동차 계의 위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와 마이바흐도 메르세데스-벤츠가 설립되는데 큰 도움이 된 인물들입니다. 우선, 여러 인물 중 고틀리프 다임러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1834년 독일 쇠른도르프(Schorndorf)에서 태어나, 1857~1859년까지 슈투트가르트의 기술학교를 다니며 기계에 대한 학문을 배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1872년에는 가스엔진으로 유명한 Deutz Gasmotorenfabrik(도이츠 가스 자동차 공장)에서 엔진 기술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후 1882년 회사를 나와, 과거 인연이 있던 유능한 엔지니어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와 함께 가솔린 엔진의 시초인 ‘대형 괘종시계(Grandfather Clock)’를 개발하게 됩니다


엔진에 특별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엔진의 모양 자체가 대형 괘종시계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이 엔진의 성능은 실험용이었기 때문에 1.1마력에 불과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말 한 마리가 끄는 힘 보다 조금 더 강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다임러는 이 엔진이 마차에 장착해 실험해 볼 만큼 충분히 작고 가볍다고 생각하여 실험을 준비하게 됩니다.


다임러가 이러한 실험을 준비하는 도중,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가장 오래된 차량이자, 세계 최초의 0.5마력 오토바이 라이트바겐(Reitwagen)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1886년에는 이전에 기획한 테스트용 엔진을 마차에 장착해, 세계 최초의 가솔린 차량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동차의 가능성을 확인한 다임러는 1889년, 세계 최초의 V형 2행정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1890년, 다임러는 그동안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Daimler-Motoren-Gesellschaft'(DMG : 다임러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여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후 다임러와 마이바흐는 라디에이터를 이용한 차량 냉각방식을 개발했으며 이를 좀 더 발전시켜 벌집(허니콤) 형태의 라디에이터로 발전시켜, 엔진 냉각시스템의 소형화를 달성 하는 등 오늘날 자동차의 핵심 시스템을 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1900년, 다임러가 1880년 말부터 앓아오던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그의 회사, DMG를 남긴 채 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마이바흐는 1907년 DMG를 나와 독자적으로 비행선, 선박, 그리고 자동차와 차량 엔진을 개발하며, 마이바흐 브랜드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다임러 그룹에서는 마이바흐와 다임러가 함께 역사를 만들어나간 것으로 보고 마이바흐를 다임러 그룹의 개척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임러가 마이바흐와 함께 연구하면서 이룬 업적들이 상당했습니다.

다임러 벤츠 2/3 : 메르세데스


다임러 사후 DMG는 1902년 ‘메르세데스(Mercedes)’라는 차량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메르세데스는 당시 DMG의 오스트리아 판매 총판(대리인)이자 카레이서이기도 했던, 에밀 옐리네크(Emil Jellinek)과 관련이 깊은 모델이며, 옐리네크의 딸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날 메르세데스-벤츠라는 이름과도 인연이 있는 이름입니다.


에밀 옐리네크는 유대계 외교관이자 사업가 출신입니다. 어느 날 그는 다임러와 마이바흐의 자동차 광고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차량 두 대를 주문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Phoenix Double-Phaeton이라는 모델로, 한번 운전을 해 본 이후 마음에 들어 하며 DMG의 니스(프랑스) 지역 총판 권한을 얻어 DMG 차량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에밀 옐리네크는 DMG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귀 기울인 DMG는‘메르세데스 35hp’를 출시하게 됩니다.

이 모델이 당시 경쟁 상대인 칼 벤츠가 운영하던 Benz & Cie와의 경쟁에서 앞서가면서 상류층 인사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나중에는 딸의 이름이기도 한 ‘메르세데스’를 상표화하여 DMG의 사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다임러 벤츠 3/3 : 칼 벤츠


다임러와 함께 벤츠의 기틀을 다진 칼 벤츠 (Carl Benz)는 1844 년 독일 카를스루에 (Karlsruhe)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학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독일 카를스루에 소재 전문대학에 진학해 기계에 대한 학문을 배우게 됩니다.

사회로 나온 이후에는 기계 산업 회사(Maschinenbau-Gesellschaft)에서 2년간의 실무 교육을 이수했고, 만하임(Mannheim) 계량기 공장의 제도공 및 설계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도중에 직장을 잃고 건축회사와 철강기업에 입사하는 등 안정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1871년, 그가 가장 이루고 싶어 했던 자동차 제조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동업자인 오거스트 리터(August Ritter)와 함께 회사를 이어나갔지만, 신뢰 측면에서 서로 거리를 두면서 홀로 회사를 이끌게 됩니다.


1872년에는 아내 베르타 링거와 결혼한 이후 아내의 결혼 지참금 덕분에 점차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초기 사업 자금으로 아내가 결혼 지참금을 털어 지원한 덕분에 벤츠의 밑바탕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다임러 그룹에서는 그녀를 초기 창립자 중 한 명으로 보기도 합니다.

1877년부터는 2행정 엔진에 주력하여 최초의 가솔린 엔진, 엔진 속도 조절 기술, 배터리 점화 시동 기술을 개발하는 등 자동차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로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2행정 엔진에 주력한 이유는, 도이츠 가스 자동차 공장이 4행정 엔진 특허를 미리 선점한 탓에 특허에 저촉되지 않는 기술을 보유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벤츠가 운영하는 회사를 함께 움직이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벤츠가 연구하던 설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자, 1883년 회사를 떠났습니다. 대신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 벤츠&시에(Benz & Cie)을 설립하게 됩니다.


벤츠는 재정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면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고 1886년, 삼륜차인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기술 개발에 탄력을 얻어 1896년, 수평대향엔진(Boxer Engine)의 기초를 확립했고, 1894~1901년 세계 최초 양산차인 벨로(Velo)를 판매하는 등 19세기 말 자동차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DMG와 벤츠&시에는 경쟁관계로, 두 창립자가 서로 일면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동차 역사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과 오늘날 벤츠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차례 전쟁을 거친 메르세데스-벤츠이처럼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천재 엔지니어들이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메르세데스-벤츠의 시작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독일의 패전으로 승전국들의 막대한 배상금 청구와 일부 산업의 제한 때문에 경기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여러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DMG와 벤츠&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살아남기 위해 두 기업은 서로 연합 체제를 구축해 차량 디자인, 엔진 및 각종 부품에 대한 제조 기술, 마케팅 등의 협력관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공동 마케팅 활동은 새롭게 설립된 메르세데스-벤츠AG (Mercedes-Benz AG)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 상태가 정상궤도로 오르지 못하자, 결국 1926년 DMG와 벤츠&시에 사이에 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기업이 바로 다임러-벤츠 AG (Daimler-Benz AG)입니다.

합병 이후 다임러 벤츠는 1926년 베를린 모터쇼에 최초의 모델 W02와 W03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벤츠에서 생산되던 모든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라는 모델명을 사용했고, 엠블럼은 1916년부터 다임러가 사용해온 세 꼭짓점을 가진 별(Three Point Star)에 벤츠의 월계관 로고가 합쳐진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서 세 꼭짓점은 땅, 바다, 하늘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928년에는고성능 모델인 메르세데스-벤츠 SSK를 내놓아, 다른 제조사들보다 앞서는 기술력을 자랑했습니다. 이 차량은 7.1L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해 250마력에 최고속력 190km/h로 달릴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성능을 보였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성능은 흔한 수치이지만 20세기 초반에는 보기 드문 제원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뉘르부르크(Nurburg)를 출시해 13일 동안 2만 km를 계속 달리면서 고장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아, 벤츠의 차량들은 내구성이 매우 뛰어난 차량임을 입증해냈습니다.


벤츠가 출시하는 모든 모델들은 늘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으며, 세계 자동차 산업을 선도했습니다. 1936년엔 세계 최초 디젤 모델인 메르세데스-벤츠 260D를 내놓게 됩니다. 당시 디젤 엔진은 개발된 지 40년이 지난 상황이었지만 실제 차량에 적용된 경우는 260D가 처음이었습니다. 가솔린 모델에 비해 빠르지 않고 무거웠지만 상대적으로 연비가 좋아, 주로 택시용으로 판매되었습니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히틀러의 애마로 유명한 메르세데스-벤츠 770모델(이하 메르세데스-벤츠 생략)이 출시되어 고급 차량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BMW와 함께 탱크, 군용차량, 항공기, 선박 엔진을 만들며 기술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메르세데스-벤츠는 BMW, 폭스바겐, 포르쉐 등 독일 제조사들과 함께 전범 기업이 되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1년 반 동안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시 생산공장 일부가 파괴된 상태였고 영업정지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이를 극복하는데 170V(W136) 모델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36년부터 1942년 사이 7만 5천여 대 정도 판매된 베스트셀러 모델로, 종전 후 영업정지가 풀린 1947년부터 1955년까지 추가로 8만 3천여 대가 판매되어 전범 기업임에도 불구,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였습니다.

당시 BMW는 기반이 열악해 차량 자체를 생산하지 못할 형편임을 감안한다면 메르세데스-벤츠의 명성과 기존에 갖춰 놓은 인프라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