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er Script 겟차 - 항공기 엔진으로 시작해 자동차로! BMW 102년 역사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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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단이 BMW의 해결책?

BMW는 현 상황을 풀어나가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모색하는데 열을 올리게 되었고, 전후 재건으로 값싼 이동 수단을 원하는 독일 내 소비자들을 위해 보급형 차량 개발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모델이 BMW700입니다. BMW700은 1959년 출시된 모델로, 차량 뒤 쪽에 엔진이 탑재된 BMW최초의 모델이며 세단, 쿠페, 컨버터블 세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저렴하지만 튼튼하고 쓸만한 성능의 차량을 만들기 위해 과거 모터사이클에 사용되었던 엔진 출력을 확대해 장착하게 되었고 비록 30마력에 크기는 오늘날 경차 모닝만한 크기의 차량이었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해 단종 시기인 1965년까지 약 18만 8천 대 실적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중성까지 겸비하게 된 BMW의 앞날은 순탄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 사정이 악화되는 바람에, 다임러-벤츠와의 인수합병 문턱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BMW내 주주들이 인수합병 제안을 거절하면서 해당 제안은 무산되었고, 독일의 산업가 헤르베르트 콴트 (Herbert Quandt)가
BMW 주식 다수를 사들이면서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BMW는 자동차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고, 대신 헤르베르트 콴트(이하 콴트)가 대주주가 되면서 그의 진두지휘 아래 BMW의 발자취가 결정되었습니다.

한 숨돌린 BMW였지만, 실적 개선을 통해 기업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콴트는 해결책으로 1961년 호평을 얻은 BMW 1500에 주목했습니다.


BMW1500은 스포츠 세단 모델로, BMW의 첫 히트작인 ‘뉴 클래스(독일명 노이에 클라세)’의 첫 양산 모델입니다. 여기서 뉴 클래스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생산하지 않았던 1,500~2,000cc 엔진을 탑재한 차량을 의미합니다.

콴트는 뉴 클래스의 첫 모델인 BMW 1500을 통해 BMW 고유의 디자인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높은 가격을 책정해 해당 모델만이 지닌 고유 가치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등장한 BMW 1800모델부터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저가형 모델인BMW1600과 프리미엄 모델인 BMW2000이 1962년부터 1972년 사이 출시되면서 ‘BMW=스포츠 세단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1964년부터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심각한 재정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주주가 되면서 BMW를 되살린 콴트는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든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뮌헨에 있던 생산공장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 할 만큼 생산 일정이 계속되자뮌헨 북동부에 위치한 자동차 회사 Hans Glas GmbH의 딩골핑 과 란츠후트 생산 공장을 인수해 새로운 생산라인 증설이 이루지게 됩니다.

BMW 시리즈의 탄생, 글로벌 기업으로의 첫걸음 뉴클래스로 BMW 브랜드 이미지를 다지며 재미를 본 BMW는 새로운 수장으로 에버하르트 본 쿠엔하임(Eberhard Von Kuenheim)을 지목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BMW에서 출시 중인 모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바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BMW 시리즈’입니다. 1972년 BMW1800의 뒤를 잇는 BMW5시리즈를 처음 선보이며 2세대로 변경될 때까지 약 72만 대 판매 실적을 올리는 놀라운 행보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석유파동(오일쇼크)이 발생해 소비자들은 차량 내구성과 성능 외에 연비까지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1975년, BMW는 효율성 중심으로 구성된 콤팩트 세단 BMW 3시리즈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한때 3시리즈 판매 실적이 전체의 60%에 달해 BMW 주력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7년에는 벤츠 S클래스의 경쟁 모델로 7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 이 모델은 BMW에서 높은 등급에 해당하는 만큼, 각종 첨단 기술들이 먼저 적용되었습니다. 출시 초기 전자식 속도계, 속도 감지형 파워 스티어링(핸들), 차량 상태를 감지하는 체크컨트롤 등이 대표적인 기능입니다.

덕분에 다음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인 1986년까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약 28만 대 판매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에버하르트 폰 쿠엔하임 CEO의 지휘 아래 3, 5, 7시리즈가 완성되자, BMW는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북미, 스위스, 영국 그리고 일본까지 진출했습니다.

여러 나라로 진출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1973년부터 1981년으로, 짧은 기간 동안 매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1974년, 1978년 두 차례 오일쇼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및 기술력을 인정받아 과거에 비해 4배에 달하는 차량 생산량을 보였으며, 1969년과 비교해 20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90년대 이후 바쁘게 움직이는 BMW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 불황과 함께 걸프전쟁(Gulf War)으로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자동차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인수합병으로 기업 규모를 확장하는 동시에, 생산 원가를 절감하려는 움직임으로 대응하며 최대 효율을 이끌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인수한 브랜드 모델을 모아놓은 장면

이때 BMW의 새로운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은 베른트 피세츠리더(Bernd Pischetsrieder)입니다. 그는 1993년 BMW를 이끌어나갈 지휘봉을 잡은 인물로, 기업 확장을 위해 1994년 미니(MINI), 랜드로버(Rand Rover), 재규어(Jaguar) 등을 보유한 영국의 로버그룹(Rover Group)을 인수했습니다.

이어서 1998년에는 롤스로이스(Rolls-Royce)사를 인수해 영국 웨스트서식스(West Sussex) 주 굿우드(Goodwood)에 롤스로이스 전용 공장을 신설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습니다.


당시 BMW는 랜드로버의 영향으로 SUV모델 개발에 필요한 능력 일부를 얻게 되면서 1999년, BMW X5가 등장하게 됩니다. BMW가 SUV 모델을 내놓은 이유는, 이 시기 세계적으로 SUV 유행 조짐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BMW의 SUV도전은 의외로 호평이 이어지며 성공적인 데뷔 전을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불경기에 따른 영국정부의 규제 강화로 BMW의 로버 그룹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혼다(Honda)와 토요타(Toyota)등 일본 브랜드의 급성장으로 BMW는 2000년대 초 경영난에 봉착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과도한 몸집 불리기와 각종 규제, 경쟁사의 견제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결국, BMW는 2000년 로버 그룹 중 미니(MINI)사만 남기고 랜드로버(LAND ROVER)는 포드사에, 나머지 로버는 영국의 피닉스 컨소시엄(Phoenix Consortium)에 각각 매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BMW 그룹은 기존 브랜드인 BMW와 함께 미니, 롤스로이스만 보유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후 내부인사인 헬무트 판케(Helmut Panke )가 BMW 사령탑 지휘봉을 이어받으면서 기술 개발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BMW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iDrive, 능동형 크루즈 컨트롤 등 첨단 기능이 포함된 신형 BMW 5시리즈를 선보였고, 2010년까지 130만 대 이상 판매량을 보이는 등 실적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신형 5시리즈가 선전하고 있는 도중, 헬무트 판케의 정년 퇴임으로 인해 2006년, 생산 개발 부서를 거치며 BMW에 몸담고 있던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Norbert Reithofer)가 BMW의 새로운 CEO로 취임했습니다.


2007년에는 쿠페형 SUV인 BMW X6의 등장으로 SUV시장에 새로운 경쟁구도를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2014년 한 단계 체급을 낮춘 쿠페형 SUV모델 BMW X4를 출시해, 쿠페형 SUV시장의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벤츠에서 GLE쿠페 및 GLC쿠페가 등장하고 그 외 유명제조사들의 쿠페형 SUV 출시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말에는 전기 자동차 BMW i3를 출시하며 시대 흐름에 맞추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BMW i3는 탄소섬유로 제작되어 차체가 가볍고 연료 효율성이 뛰어나며, 출시 전 1만 대의 주문을 받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최근 BMW는 각 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 또는 풀모델 체인지로 상품성 개선에 나서고 있으며, 동시에 자율 주행 및 전기차와 같은 미래 경쟁력을 위해 연구개발에 자금을 아끼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BMW가 개발한 첨단 기능들? BMW는 100년 넘는 세월 동안 단순히 신모델을 출시하며 인수 전을 펼친 것은 아닙니다. 각종 첨단 안전 및 편의 기능을 연구 하고 여러 차량에 적용하며 운전자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선, 디젤엔진 기술이 있습니다. 최근 BMW화재로 인한 리콜 사태로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BMW 세단과 디젤엔진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석유파동(오일쇼크)을 겪으며 소비자들은 경제적인 차량을 원했고, 이에 BMW는 디젤엔진 개발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덕분에 1983년 디젤엔진이 탑재된 BMW 524td모델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8년, 세계 유명 자동차 경주 중 하나인 뉘르부르크링 내구 레이스 24에 디젤엔진이 탑재된 BMW 320D모델을 내보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디젤엔진에 대한 우수성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BMW하면 떠오르는 항목 중 하나로 xDrive가 있습니다. 1985년 BMW3시리즈에 처음 적용된 기능으로, BMW고유의 상시 4륜구동 시스템입니다. 눈길, 진흙탕 등 각종 험지에서 네 바퀴에 적절한 힘을 분배해 주행 안정성을 향상시킵니다.

이 기능은 여러 제조사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벤츠는 4MATIC, 아우디는 콰트로라 불렀습니다.


이외에 조명 부문에서 BMW의 상징인 엔젤아이 디자인과 어댑티브 헤드라이트가 있습니다. 엔젤아이는 2000년 4세대 5시리즈 페이스 리프트 모델에 처음 적용된 헤드램프 디자인으로, 단순히 멋에 그치지 않고 멀리서도 차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인성을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어댑티브 헤드라이트는 2005년 개발된 조명 기술로, 야간 운전 시 어두운 도로에서 운전자가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능형 시스템입니다.

곡선 구간에서는 헤드라이트가 진행 방향을 따라 미리 회전해운전자 전방을 멀리 밝혀주며 언덕길에서는 주행 각도에 맞춰 야간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차체를 가볍게 만드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주로 알루미늄을 활용해 무게를 줄이는 대신 구조변경을 통해 비틀림 강성을 강화해 고속주행 시 차체 안정성을 높였습니다. 덕분에 스포티한 외관, 가벼운 차체와 고성능 엔진 조합에 따른 경쾌한 주행이 조화를 이루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차량 경량화로 친환경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며 연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 부수적인 효과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102년 역사 BMW, 새로움을 추구하는 BMW
이처럼 BMW는 102년 동안 우여곡절 끝에 벤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조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BMW는 역동적인 디자인과 성능을 강점으로 내세워 운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은 점이 BMW의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지목하기도 합니다.

또한 1950년대부터 시작된 BMW 고유의 디자인 콘셉트를 끝까지 지켜온 점은 독일 남부 지방의 장인정신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밖에 시대 흐름에 맞게 디젤, 친환경, 첨단 안전기능 등을 꾸준히 개발해 오면서 운전자 중심의 차량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은 점도 오늘날의 BMW를 있게 만든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BMW는 102년 동안 자동차 역사와 함께 걸어온 장수기업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BMW는 세련되고 첨단을 달리는 하이테크 자동차 기업입니다. 그만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받아들이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BMW는 앞으로 어떤 신차와 신기술을 내놓으며 글로벌 상위 브랜드의 명성을 이어나갈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