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er Script 겟차 - 항공기 엔진으로 시작해 자동차로! BMW 102년 역사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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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BMW는 너무 흔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BMW는 Bus / Metro / Walk 을 의미합니다. 물론 첫 문자가 BMW로 맞아떨어져 나온 이야기지만, BMW브랜드에 대한 열망을 넌지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난 BMW(브랜드)가 좋은데 BMW(버스/지하철/걷기)가 최선이야.”와 같은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동그란 앰블럼 내부의 십자가, 그리고 흰색과 파란색의 조합은 단순하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BMW의 상징입니다. 대부분 BMW가 벤츠와 견줄만한 우수한 브랜드라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자동차 마니아를 제외하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데 있어 자동차 브랜드 스토리를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현재 내 위시리스트에 적혀있는 BMW 차량의 모습은 어떻고 성능과 각종 첨단 사양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가격과 프로모션은 어떤지 살펴보는 것만 해도 이 차량이 얼마나 좋은지 가늠하기에 충분할 정보가 될 것입니다.

다만 BMW브랜드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 브랜드는 어떤 부분이 특기구나!” “아! 이런 이유로 특이한 디자인을 사용하게 되었구나!”와 같은 BMW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BMW는 2018년을 기준으로 102년이라는 1세기 넘는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브랜드입니다. 사실상 자동차와 기계공학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와 같이 대단한 역사를 지닌 브랜드의 스토리를 알아둔다면, BMW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BMW의 역사를 살펴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16, 설립 원년. BMW의 시작 BMW의 시작은 1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엄밀히 따지면 첫 시작으로 볼 수 없지만, BMW설립의 ‘씨앗’ 역할을 한 시기이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업주는 아니지만 BMW설립과 관련된 인물로, 칼 프리드리히 라프(Karl Friedrich Rapp)가 있습니다.

칼 프리드리히 라프(이하 칼 라프)는 항공기 엔진 제조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라프 모토렌 베르케(Rapp Motoren Werke)’ 군사용 항공기 제조사를 설립한 상태였으며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군을 위해 각종 항공기 엔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칼 라프는 전쟁 기간 중 개발 실패, 열악한 생산환경 때문에 점차 기업 운영이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칼 라프의 회사에 감독관 자격으로 파견된, 오스트리아 출신 기계 및 전기공학 엔지니어인 프란츠 요세프 포프(Franz Josef Popp)는 생산라인 효율성을 끌어올리고자 동업자인 막스 프리츠(Max Friz)를 영입한 후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1916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이라는 절벽에 몰리게 되었고, 프란츠 요세프 포프는 이를 기회 삼아 ‘라프 모토렌 베르케’를 인수하게 됩니다. 동시에 ‘바이에른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 GmbH)’로 사명 변경을 진행했습니다.

‘바이에른 모토렌 베르케’는 우리말로 ‘바이에른 자동차 제작소 유한책임회사’입니다. 그리고 사명을 줄여서 BMW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즉, BMW의 창립자는 프란츠 요세프 포프입니다.

1917년에는 오늘날 BMW를 상징하는 엠블럼이 탄생했습니다. 앰블럼 내 파란색과 흰색은 독일 바이에른 주를 상징하는 색상이며, 앰블럼 전체는 비행기 프로펠러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BMW가 처음에는 자동차 회사가 아닌 비행기 엔진 제조사로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1918년 GmbH(유한책임회사)에서 AG(주식회사)로 주식상장을 하면서 BMW는 독일 군대에 항공기 엔진을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모터사이클 등 일부 품목을 통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BMW는 비행기 공장인 아이제나흐(Eisenach)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첫 작품은 영국 자동차 대중화의 상징 오스틴 세븐(Austin 7)모델에 대한 제작 및 판매권을 사들여 완성차를 제조 및 판매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28년, 드디어 첫 모델인 BMW Dixi(딕시)를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BMW 3/15 DA1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오리지널 모델로 보이지만, 오스틴 세븐을 기반으로 개발된 모델이었기 때문에 연간 2천 대 수준 생산량을 기준으로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참고로 3/15는 날짜가 아닌, 마력에 대한 세금 등급, 과세마력(Tax horsepower)과 실제 마력 수치를 표시한 것입니다. 즉, 3은 과세마력을 의미하며 15는 차량의 실제 마력을 의미합니다.

이후BMW 3/15 DA2~4까지 시리즈로 확대되면서 자동차 기술력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BMW 3/15 DA1을 기준으로 최대 75km/h 속력으로 주행 가능했으며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2도어 살롱, 컨버터블 등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하게 됩니다.

BMW, 오리지널 모델의 출현





그리고 1932년, BMW 3/15 시리즈는 계약 만료에 따라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고, 본격 오리지널 모델인 BMW 3/20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3/20은 BMW독자 설계 및 생산이 진행된 첫 차량으로 1932년부터 1934년까지 AM1~4까지 다양한 모델이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3/20이 제조되던 시기에 BMW303모델이 등장했습니다. 이 모델은 BMW의 상징인 엠블럼과 키드니(신장) 그릴이 최초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BMW는 다임러-벤츠와 합병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BMW303모델이 등장하면서 경쟁구도가 형성되는 바람에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BMW





1936년에는 항공기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2인승 레이싱 모델 BMW 328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모델에 주목한 이유는당시 BMW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술이 한곳에 녹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델은레이싱에 적합한 차체를 만들기 위해 알루미늄 차체와 강철 프레임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튼튼한 후방차축(리어액슬)과충격 완화를 위한 전방 독립식 서스펜션을 적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출력은 직렬 6기통 M328 고성능 엔진을 통해 80마력 및 12.8kg.m 최대토크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최대 150km/h 속력과 제로백 10.5초를 기록했습니다.

BMW는 당시 기준으로 괴물 같은 성능을 자랑하는 이 경주용 차량을 가지고 1936년부터 1940년까지 172회 경주에 참여하여 141차례나 우승하는 업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1938년 1,600km를 달리는 장거리 경주에서 평균속력 166km/h를 기록해 BMW의 기술력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전범기업 낙인 BMW, 돌파구는 프리미엄?





시간이 흘러 나치 독일의 일원이었던 BMW는 자연스레 각종 로켓 및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는 군수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의 승리가 예상되면서 BMW의 상황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지만, 나치 독일군이 영국 점령을 마무리하지 않은 채로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무시하고 침공을 강행하면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고, 결국 나치 독일의 패배로 전범국가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이후 BMW를 비롯한 벤츠, 포르쉐 등 독일 군수공업의 중심에 서있던 기업들이 모두 수년 동안 영업정지를 당하거나 경영진들이 징역살이를 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BMW생산공장 내에서 강제 노역 중인 사람들




전쟁으로 폐허가 된 BMW공장


BMW는 전범기업 최초로 죄수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혹독한 강제노동을 시킨 점과 군수물자를 생산했다는 죄목으로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며 설상가상 생산 공장들도 쑥대밭이 되거나연합군에 의해 모두 해체되는 바람에 다시 일어설 가능성이 희박했습니다.





1948년, 영업정지 기간이 끝나자 BMW는 프라이팬과 냄비를 만들며 간신이 운영했으며, 미국의 허가 아래 모터사이클을 만들던 경험을 되살려 R24모델을 출시하여, 회생 가능성을 점차 높이게 되었습니다.

R24모델은 전쟁 전 개발되었던 R23모델의 후속작으로, 품질을 개선하기보다 부족한 물자를 최대한 활용해 값싼 이동 수단을 만드는데 주력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황폐화된 국토와 궁핍한 시민들의 지갑 사정 때문에 최대한 저렴하고 이동하기 편리한 운송수단의 필요성이 대두된 시점이었습니다.





BMW의 도전은 시기상 맞아떨어지면서 2년 동안 1만 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고 1952년이 돼서야 다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출시한 모델은 4도어 럭셔리 세단인 BMW501과 502로, 어려운 상황에 맞지 않게 고급 세단 출시 전략으로 강행돌파를 시도했습니다.

당연히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으나, BMW328을 만들 당시 인정받았던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얻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재정상태가 악화되면서 새로운 판로를 모색해야 했고, 1950년대 중반 벤츠가 선점한 미국 스포츠카 시장으로 눈을 돌려 고성능 럭셔리 모델 BMW503과 507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성능은 507을 기준으로 3.2L V형 8기통 엔진을 사용해 150마력 및 18.0kg.m 최대 토크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최대 225km/h의 속력을 낼 수 있었고, 제로백 10.6초를 기록했습니다.이처럼 럭셔리 고성능 모델이었지만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인해 외면받게 되었고, 오히려 기업 재정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